유엔 사무총장 다그 함마슐드

1961년 9월 17일 자정 무렵, 아프리카 대륙의 중심부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실은 비행기가 추락했는데, 그 진상은 아직도 미궁에 빠져 있다. 비행기가 불길에 휩싸이는 순간 세계는 위대한 지도자 중의 한 명인 다그 함마슐드(1905-1961)를 잃었다. 역사가 토인비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함마슐드는 가장 위대한 정치가였고, 에이브러햄 링컨 이후로 ‘자신의 시대에 가장 잘 어울렸던’ 사람이었다.”

그 운명적인 밤이 지난 후, 그의 측근이었던 ‘퍼 린드’는 그의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오랜 세월 손때가 묻어 낡고 바랜 서류철들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일기들이 타자로 정리되어 있었다. 유엔 시절 함마슐드의 공적을 담은 정치적 회고록일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니었다. 그것은 36년에 걸쳐 자신의 개인적 묵상을 담은 600건이 넘는 일기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영적 고전인 『흔적들; Markings』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175페이지에 걸쳐 꼼꼼히 쓴 글들에서 자신의 저명한 국제공무원 직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만났던 많은 대통령들과 왕들, 수상들에 대해서도, 그가 중심이 되었던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었다. 그 대신 철저한 정직함을 통한 ‘내 영혼과 하나님의 결혼’이라는 난해하고 때로는 고뇌스러웠던 길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글이 현대 문명에서도 가장 변화가 심한 국제 정세 가운데서 씌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정말 놀라운 저술이다. 함마슐드의 직업은 그의 깊은 영적 확신을 그대로 생활에 실천하는 장소였다. 그는 살아 있는 믿음을 소유했고, 그 믿음을 평화와 선한 질서를 지키는 책임 있는 자리로 조용하고도 겸손하게 가져왔다. 다음은 그의 일기의 일부분이다.

“나는 누가 그 질문을 했는지 모르고, 정확히 언제 그 질문을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느 한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감히 ‘네’라고 대답했을 때 ‘의미’를 경험하게 되었다. ‘네’를 되풀이해 말하면 모든 것이 의미를 얻는다.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질 때, 어떻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살 수 있겠는가! 나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헌신하는 대가는 치욕이라는 것, 인간이 가능한 가장 높임을 받는 것은 깊은 굴복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시간과 장소에 도착했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가는 동안 나는 한 걸음 한 걸음씩, 한 단어 한 단어씩 배우던 복음서의 모든 말씀 뒤에는 한 사람과 ‘그 누군가’와의 경험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기도에도, 그리고 ‘이 잔을 마시겠나이다’ 약속하는 기도 뒤에도 있었다. 아니, 그것은 십자가에서 들려온 모든 단어들 뒤에 있었다.”

그의 비극적인 죽음이 있기 몇 주 전에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썼다.

“그 누군가가 끝날까지 계속 갈 용기가 있느냐고 물었다.

내 대답은 다시 생각할 것도 없이 ‘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