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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과 증언
작성자 홍성국 등록일 2021-10-29 14:51:25 조회수 11



저항과 증언

 

오늘은 종교개혁 504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개혁은 무릇 시끄러운 법이다. 관성에 사로잡힌 기성 체제는 철벽을 쌓기 마련이고 그럴수록 저항은 거칠고 거세진다.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자들은 개혁자들을 성가시다 못해 불온 세력으로 매도한다. 이 때문에 개신교의 이름이 프로테스탄트곧 항의자가 되었다.

이 명칭의 유래는 이러하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가톨릭 측이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에 따라 신앙의 자유를 인정했다가 철회하자 루터파는 항의서를 제출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공개적으로 항의하고 선서한다.”는 말에서 항의라는 말만 뚝 떼어 조롱한 거다. 너희들은 불평불만자라는 뜻이다. 항의는 저항이고, 선서는 증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개혁자들은 무엇에 저항했고, 무엇을 증언했는가? 성서 위에 있는 교황의 권위에 도전했다. 교황이 제 아무리 높아도 성서 아래다. 교황도 사람인지라 그도 약점과 오류투성이다. 그가 온전히 성서를 알 턱이 없다. 모르는 것도, 틀린 것도 있다. 성경의 저자인 성령과 성도 공동체의 도움을 받아 해석할 뿐인데도 그는 무결점, 무오류의 화신이었다.

성서에 사로잡힌 루터는 성서가 우선이었다. 라틴어가 아닌 영어로 주기도문을 읽고 자녀를 가르쳤다는 이유만으로 화형을 당하던 시대다. 하나님과 신자 사이를 가로막을 것은 없다. 교황의 권위를 성서 아래로 끌어내린 그는 사제만이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권력을 신자에게 나눠줬다. 그리하여 신자가 사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읽도록 성서를 번역했다. 루터의 저항은 성경에 이어 예배였다. 예배에 관한 한, 신자가 할 일이 거의 없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라틴어 미사, 사제와 성가대만이 찬양하는 특권을 움켜쥐었고, 만찬은 사제가 떡을 신자의 입에 친히 넣어주었다. 포도주는 언감생심 입도 못 대었다. 루터는 정확하게 뒤집는다. 신자는 예배와 찬양을 감상하는 관중이 아니다. 빵만이 아니라 포도주도 마시고, 다 함께 하나님을 노래한다.

이 모든 개혁의 출발은 새로운 하나님의 발견이었다. 루터에게 하나님은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은 엄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기 위해 아무리 고행과 수도를 해도 하나님을 차마 아빠라고 부를 수 없고, 사랑할 수 없었다. 십자가의 예수님, 성서의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해주시는 하나님, 인간을 용서하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었다. 그 하나님이 너무 좋아 루터는 잘못된 하나님 이해에 온몸으로 저항했고, 새로운 하나님을 전 삶으로 증언했다. 종교개혁의 기념은 저항과 증언이다. 우리 개신교인 모두가 저항자가 되고, 증인이 되는 그것이 종교개혁 기념 방식이고, 우리 시대 교회 개혁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