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기억을 창조적 기회로

<레위기 26:12-13>

하나님의 시간

우리 삶의 시간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구분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세월이 흐름과 함께 과거의 기억들은 점차 사라지겠지만, 과거의 사실은 어떤 형태로든 오늘과 내일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미래의 삶이 과거에 붙들려 있게 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면 우리는 그 ‘의미’를 바꾸어 냄으로 내게 꼭 필요했던 과거로 만들어 내는 것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모든 것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시기에(롬8:28)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늘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혹자는 미래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새로운 시간과 일을 주기 때문만이 아니라, 과거를 끝없이 새롭게 창조해 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날을 주신 것은 과거를 잊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지나간 시간을 다시 창조할 기회로 주신 것입니다. 어떠한 과거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시간 안에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역사적 기억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구원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430년간 종살이하던 애굽의 속박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가져다주었으며 자유의 삶으로 안내하였습니다. 출애굽은 백성들 각자의 인생과 삶의 의미의 변화를 주었을 뿐 아니라, 민족과 역사의 정체성의 전환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후 백성들에게 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지속적으로 출애굽의 ‘역사적 기억’을 요청하셨습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 이제는 더 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니며, 너희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역사적 기억은 그들의 삶을 새롭게 창조해 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나온 과거의 시간은 더 이상 실패와 절망으로 얼룩져 버려질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음을 기억할 때, 애굽에서의 시간은 하비루의 정신을 깨닫고 경험하는 과정이었으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훈련의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우리의 역사적 기억은 창조적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창조적 기회

안타깝게도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다시 멸망과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고 말았습니다. 바로의 통치를 벗어났으나 하나님의 통치아래 온전히 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장소와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통치와 질서의 개념인 것을 감안했을 때, 그들은 ‘애굽에서 가나안으로’라는 시간과 공간의 이동은 했지만 정작 존재의 변화를 이루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단언컨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청하신 역사적 기억은 단지 과거의 은혜에 머물러 있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을 통해 그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부르신 것은 이 ‘역사적 기억’을 기필코 ‘창조의 기회’로 만들어 하나님의 시간을 살라하시는 애끓는 당부였습니다. 이를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는 애굽과 가나안의 가치체계로부터 벗어나야 했습니다. 착취와 폭력, 탐욕과 우상숭배의 가치를 추구하는 삶은 그들을 불평과 원망, 비난과 정죄, 풍요의 욕망 속으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이것으로부터 떠나야 했습니다. 다음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체계를 따라야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사랑과 평화, 공평과 정의를 추구하는 삶을 통해 존재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추구하는 삶이야 말로 역사적 기억을 창조적 기회로 바꾸어내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기억’이라는 영어 단어 ‘remember’는 ‘re’라는 단어와 ‘member’라는 단어의 의미가 함께 있습니다. 다시 멤버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오늘, 다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부름 받은 공동체입니다. 고단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믿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 것과 공동체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